[ESKAKA=류창선 기자] 대학농구 팬이라면, 더 나아가 한국 농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비슷한 아쉬움을 가져봤을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대표팀, 야구,축구 등 다른 종목과 비교되는 프로농구의 인기, 그리고 대중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는 대학농구까지. 질문은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인다. 한국 농구는 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까.
흥행을 이야기하면 스타와 경기력의 문제를 빼놓기 어렵다. 팬의 눈높이를 사로잡는 선수가 많고 높은 수준의 경기가 이어진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경기장을 찾는다. 반대로 ‘왜 농구는 축구와 야구처럼 좋은 선수가 충분히 나오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선수 개인의 재능이나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환경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선수가 성장하려면 좋은 경쟁 상대와 충분한 출전 기회가 필요하다. 자신의 수준보다 높은 무대를 경험할 기회도, 좋은 지도자와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농구를 시작한 아이가 프로까지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충분히 넓어야 한다.
김병욱 대표가 인터뷰에서 지적한 것도 결국 이 부분이었다. 대학과 프로의 팀 수가 많지 않고, 어린 연령대에서는 엘리트 코스를 벗어나 농구선수를 꿈꾸기가 더욱 어렵다. 시작하는 사람도 적고 살아남을 자리도 좁다면, 그 꼭대기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선수가 계속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결국 한국 농구가 가진 여러 아쉬움의 뿌리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인프라’라는 단어와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인프라는 단순히 한 두가지의 저변들 만을 뜻하지 않는다. 선수가 성장할 수 있는 팀과 리그, 지도자와 트레이너, 더 높은 무대와 연결해주는 시스템까지 모두 포함한다. 여기에 예산과 제도, 학교 운동부 운영 등 팬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얽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 농구의 문제는 특정 선수나 지도자 몇 명을 바꾼다고 해결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지금 가장 빠르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김 대표가 강조한 해외 도전일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이미 정상급에 도달한 유망주가 자신보다 크고 빠른 선수들을 만나고 다른 방식의 농구를 경험한다면, 그 경험은 결국 한국 농구의 기준을 높이는 자산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당장의 국내 농구에는 손해가 생길 수도 있다. 가장 뛰어난 선수가 빠져나가고 흥행을 책임질 스타가 해외로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선수를 국내에 붙잡아 두는 것만으로 경쟁력을 지키려 한다면 같은 문제를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때로는 오늘의 전력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내일 더 좋은 선수를 만들어내는 선택이 필요할지 모른다.
다만 결론이 ‘그러니 유망주를 해외로 보내자’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몇몇 재능 있는 선수를 해외로 보내는 것은 좁은 길 위에서 뛰어난 몇 명에게 새로운 출구를 만들어주는 방법이지, 그 길 자체를 넓히는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해외 진출과 함께 국내의 토대도 넓혀야 한다. 학교 운동부와 엘리트 코스에 집중된 선수 육성의 문을 넓히는 것은 물론, 어린 유망주들이 국내 무대의 한정된 높이와 전술에 갇히지 않도록 더 강하고 다양한 상대와 부딪힐 '경험의 장'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가까운 일본의 사례는 좋은 참고가 된다. 일본은 B리그 산하 유망주들을 호주 등 농구 강국의 팀들과 꾸준히 교류하게 하고, 비시즌에는 유럽 명문 구단을 자국으로 초청해 국제 친선 대회를 여는 등 어린 선수들의 국제 감각을 끌어올리는 데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국내 선수들 사이에서만 높이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인 신장과 낯선 전술을 가진 해외 팀들과 수없이 깨지고 부딪히며 스스로 해법을 찾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처럼 어린 유망주들이 일찍부터 세계 수준의 피지컬과 선진 농구를 경험하며 경쟁할 수 있도록 리그와 협회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나아가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와 트레이너 역시 이러한 잦은 국제 교류를 통해 해외의 최신 훈련 기법과 선수 관리 방식을 직접 체득하고, 이를 국내 시스템에 이식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과 프로에서는 각 팀만의 개성 있는 농구 스타일과 프랜차이즈 스타를 발굴해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만들어내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문제를 하나의 긴 흐름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유소년 저변과 대학농구, 프로리그, 해외 진출과 국가대표의 경쟁력은 서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어느 한 부분만 고쳐서는 다른 곳에서 다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 농구에 필요한 것은 당장의 정답 하나보다 10년 뒤 어떤 농구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꾸준한 고민과 실행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선수들의 성장을 막고 있는지 계속 분석하고, 효과가 없는 제도는 고치며, 가능성을 보인 시도에는 더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해외 진출 역시 그 변화의 한 방법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현중 한 명, 박지현 한 명과 같은 특별한 선수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선수가 나올 가능성을 지금보다 높이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당장의 성적과 흥행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정말 바꾸고 싶다면 시선은 다음 경기나 다음 시즌보다 더 멀리 향해야 한다. 오늘의 한국 농구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내일의 한국 농구가 더 많은 선수를 품고 더 높은 곳에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한국 농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어쩌면 거기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