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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중앙대 에이스'로 보낸 4년, 김도윤을 만나다
작성자 블루가디언 최태은작성일 2026.09.20 조회 19

[BLUE GUARDIAN = 글/사진 최태은 기자, 선수 본인 제공]


# 야구와의 첫 만남


김도윤이 처음 야구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었다. 아버지가 TV로 야구 경기를 틀어놓으셨지만, 당시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다른 것을 보자고 할 정도였다.


그런 김도윤에게 야구의 매력을 알려준 것은 한화 이글스였다. 아버지와 함께 야구장을 찾았던 날, 마침 한화가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의 흐름이 뒤집히는 순간을 직접 지켜보며 야구의 짜릿함을 느꼈고, 그날을 계기로 야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친구들과 동네에서 야구를 하며 자연스럽게 야구와 가까워졌고, 야구장을 찾는 일도 잦아졌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야구를 시작한다는 이야기에 “프로 가는 거냐”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부모님은 반대했다. 유소년 야구팀 감독님은 반년 동안 부모님을 설득했고, 결국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김도윤은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 에이스가 되기까지


대학교 에이스의 자리까지 오기까지, 힘든 순간도 많았다. 


중학교 1학년 때 리틀야구단 감독의 추천으로 대전 문정중학교에서 야구부가 있는 청주 현도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야구를 위해 전학을 결정했지만,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음이 잘 맞았던 친구들이 많았던 만큼 아쉬움도 컸고, 전학을 가는 날에는 친구들과 함께 울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야구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또 한 번의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공을 던지는 것 자체는 재미있었어요. 공을 던지는 건 여전히 좋았는데, 야구가 잘 안 풀리다 보니까 야구 경기를 하는 것 자체에 흥미가 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김도윤은 어려운 시기가 찾아올 때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 지금의 김도윤을 만든 이들


김도윤이 지금까지 야구 선수의 길을 걸어오는 과정에서 곁에서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 만났던 ‘대전 꿈돌이 유소년 야구단’ 김명민 감독이었다.


“제가 처음 야구를 시작하게 해주신 분이에요. 처음부터 저를 믿어주셨고, 제가 선수로서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분이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커요.”


대학 시절에는 재활센터 홍남일 코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대학교 2학년 때 어깨가 안 좋았고, 야구에 대한 확신도 없던 시기였어요. 그때 재활센터에서 많이 도와주셨고, 코치님께서 어깨 힘이 좋다고 격려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 말씀들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 중앙대에서의 4년


김도윤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 두 곳에만 원서를 넣었다. 중앙대에 최초 합격하지 못해 다른 학교 장학금을 신청하던 중, 추가합격 연락을 받았다.


“대학교 원서를 두 장밖에 안 썼어요. 처음에는 중앙대에 떨어져서 다른 학교 장학금을 신청하고 있었는데, 추가합격 연락이 왔어요. 그때 정말 기뻤죠.”


그렇게 중앙대에 입학한 김도윤은 대학교 2학년부터 17번을 달았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매년 등번호가 바뀌었지만, 2학년 때 17번을 선택한 이후 현재까지 같은 번호를 유지했다.


“번호에 크게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대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선배들이 입었던 유니폼을 입어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17번을 입었어요. 그때 야구가 잘됐던 기억이 있어서 17번을 선택하게 됐어요.”


국가대표에서도 17번과 다시 인연이 닿았다. 당시 17번을 원하는 선수가 여러 명 있어 가위바위보로 번호를 정했고, 김도윤이 한 번에 이기면서 17번을 달게 됐다.


“국가대표에 갔을 때도 17번을 달고 싶어 하는 선수들이 여러 명 있었어요.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한 번에 이겨서 17번을 달게 되었어요. 생각해보면 17번이 조금 운명처럼 느껴지는 번호인 것 같기도 해요.”


중앙대에 입학한 뒤 김도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첫 경기였다. 


“처음 선발로 던졌던 경기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이전까지는 경기 상황에 따라 필요할 때 등판하는 백업 투수에 가까웠다면, 중앙대에 와서는 저를 믿고 선발로 써주시는 걸 보면서 ‘믿음을 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뻤어요.”


4년 동안 김도윤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은 김상록 코치였다. 꾸준한 격려와 칭찬으로 김도윤에게 힘을 보탰다.


“김상록 코치님께 많이 의지했어요. 칭찬도 많이 해주셨고, 재활할 때도 계속 신경 써주셨어요. 제가 힘들 때마다 많이 격려해주셔서 지금까지 잘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중앙대에서 보낸 4년 동안 김도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지난 8월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경희대학교와의 경기였다. 이날 김도윤은 대학 입학 후 첫 완투승을 거뒀다. 포수 조국과의 호흡도 유독 잘 맞았던 경기라 더욱 기억에 남았다. 


“5회가 끝났을 때 이미 투구 수가 100개 넘었는데, 그래도 ‘할 만한데?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끝까지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운드에서 기 싸움도 있었지만 정말 재미있게 경기했던 것 같아요. 특히 국이가 그렇게 크게 리액션 하는 걸 처음 봤어요. 국이랑 잘 통한다고 느꼈던 경기였고, 놀면서 야구한 느낌이었어요.”


4년 동안 꾸준히 마운드에 오른 김도윤에 대해 김상록 코치는 ‘김진수 이후 5년 만에 나온 에이스’라고 평가했다.


“중앙대 에이스라는 말을 많이 듣기는 했는데, 에이스라는 이름을 생각하면서 던지지는 않아요. 공 하나하나 던지는 데 급급하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해서 신중하게 던지는 것 같아요.”


김도윤은 올시즌 왕중왕전에서도 큰 활약을 펼치며 감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준 감독은 “김도윤이 연달아 세 경기에 나섰는데도 힘든 내색 없이 잘 던져줬다”며 “김도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김도윤이 스스로 가장 잘했다고 꼽은 경기는 첫 경기였던 단국대학교전이었다. 김정환에 이어 마운드에 올라 팀의 승리를 지켰던 경기였다.


“정환이 뒤에 나가서 4이닝을 던졌는데, 정환이가 앞에서 잘 막아줘서 부담도 있었어요. 그래도 잘 막은 것 같아요. 승부치기 때 점수를 주기는 했지만, 후반에 흐름을 가져올 수 있어서 기뻤어요. 감독님께서 믿고 맡겨주셨기 때문에 그에 맞게 열심히 던졌던 것 같아요.”


# 태극마크를 달고


대학 마지막 시즌에는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새로운 무대에 섰다. 예상하지 못했던 국가대표 선발 소식에 놀라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국가대표 단톡방에 갑자기 초대돼서 너무 놀랐어요. ‘내가 국가대표 간다고?’ 하고 핸드폰을 떨어뜨렸어요. 그만큼 믿기지 않았고, 기뻤던 것 같아요.”


국가대표로 생활하며 배운 점도 많았다.


“공이 좋은 투수들이 정말 많아서, 내가 아무리 야구가 잘되더라도 자만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겸손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기하면서도 배운 게 많았는데, 일본은 짜임새가 정말 좋았고 미국은 힘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도윤은 국가대표 경기뿐 아니라 올스타전과 불꽃야구 등 다양한 무대에도 나서며 한 시즌을 보냈다. 김도윤이라는 투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국가대표 경기뿐만 아니라 올스타전이나 불꽃야구처럼 여러 무대에서 저라는 투수를 보여드릴 기회를 받아 감사했어요.”


# 그라운드 밖의 김도윤


야구 외에도 김도윤은 일상 속에서 소소한 취미를 즐겼다. 


“친구들이랑 PC방에 가서 게임하는 것도 좋아하고,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해요. 경기 전이나 끝나고 나서는 노래방에 가서 고음 지르면서 스트레스도 풀어요.”


대학생활에서 즐거웠던 순간으로는 올해 축제를 꼽았다. 평소 축제에 자주 가지 않았지만, 왕중왕전을 마친 뒤 4학년 마지막 축제를 즐기기 위해 공연을 보러 갔다.


“원래 축제를 많이 안 가는데, 올해 4학년 마지막 축제이기도 해서 공연을 즐기로 갔어요. 특히 YB 공연이 너무 좋았어요.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YB 형님들 너무 멋있다고, 사랑한다고 DM도 보냈어요.”


# 꿈꿔왔던 무대를 앞두고




이제 졸업을 앞둔 김도윤은 야구를 시작한 순간부터 꿈꿔왔던 프로 무대를 향해, 세 번째 드래프트를 기다리고 있다. 드래프트를 앞둔 지금,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고 있다.


“드래프트가 얼마 안 남았는데 시계 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살이 찢어지는 느낌이에요. 정신이 붕 떠 있는 느낌도 들고, 기대도 되면서 걱정도 되고 그래요. 맥그리거한테 한 대 맞고 기절했다가 드래프트 끝나고 다시 일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프로에 진출한다면 이루고 싶은 목표도 분명했다. 김도윤은 1군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서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프로에 진출한다면 1군 선발 투수가 꼭 되고 싶어요. 프로에 가서 2년 안에 1군에 올라가서 5선발 안에 들고 싶어요.”


인생의 절반을 야구와 함께한 김도윤에게 야구는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만 남기에는 너무 큰 존재였다.


“야구는 제 인생의 전부예요. 인생의 절반을 야구를 했으니까 어린 시절 추억으로 남기기에는 너무 작은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큰 의미로 남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선수로 달려온 자신과 드래프트 이후의 자신에게도 각각 한마디를 남겼다.


“지금까지 고생 많았어. 속상한 일이든 화난 일이든 기쁜 일이든 나중에 다 도움이 되더라고. 그런 일들을 다 너무 미워하지 말고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일희일비하지 마. 드래프트 됐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고, 안 됐다고 너무 실망하지도 말고. 나중에 더 좋은 일이 무조건 생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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