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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받지 못한 손님, 이준희 인터뷰 - 上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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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USF 이경민작성일 2026.09.30 조회 1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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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SF 이경민기자] 작년, 화제가 됐던 대학축구 골키퍼가 있다. 바로 경희대학교 골키퍼 이준희다. 이준희는 지난 ‘제61회 추계대학축구연맹전 태백산기’에서 4번의 승부차기에서 18개의 PK 중 10개를 선방하며 경희대학교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회 최고의 골키퍼로 등극했던 이준희의 키는 179cm로, 신체조건이 중요한 골키퍼 포지션에서는 단신에 속한다. 키의 한계를 넘어 최고의 대학 골키퍼가 된 이준희를 KUSF가 만나봤다.
<프로필> 등번호: 1 포지션: GK 키/몸무게: 179/76 출신학교: 경북 자연과학고 - 경희대학교
Q. 본인의 축구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초대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제 스타일이 한국 축구에서 원하는 골키퍼와 멀어서,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감독님들께서 좋아하시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팀에 끼치는 영향력으로 신뢰받고 있습니다.
#인간 이준희 Q. 주변에서 말하는 ‘인간 이준희’는 어떤 사람인가요? 제가 할 말은 다 하는 스타일이라서 ‘씩씩하고 막힘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Q. 가장 즐기는 취미는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드라이브하는 게 취미입니다! Q. 만약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계셨을 것 같나요? 미용사나 자동차 정비사를 했을 것 같습니다.
![]() Q. 학교에서 했던 다른 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나요? 제가 경원이(이경원, 경희대 축구부 24학번)랑 ‘세계와 시민’(경희대 팀플 교양수업) 수업들 듣는데 GCP 활동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게, 저희가 남아서 버리는 옷이 많아요. 사실 엘리트 선수들이 아닌 이상 그런 옷을 구할 데가 없고, 기능성 옷이라서 가격도 비싸잖아요. 그래서 이걸 패션으로 이어볼까 하다가, 최근에 선수들 유니폼이 패션으로 뜨잖아요. 그래서 남는 것을 모아다가 팔면 재활용도 되고, 사람들 입장에서도 싸게 옷 하나 사면 좋을 것 같아서 시작했어요. 생각보다 반응도 좋고 옷도 거의 다 팔려서, 2학기 때도 한 번 더 할까 생각 중입니다.
#축구선수 이준희 Q.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무원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축구부가 유명했어요. 1학년 때 당시 골키퍼 코치님이 저희 또래 대상으로 취미반 보다는 심화 과정이고, 엘리트 선수들보다는 심화 과정이 아닌 느낌의 취미반을 운영하셨어요. 저는 당시 또래보다 기본기는 안 좋았지만, 키가 커서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했어요. Q.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축구가 한 골을 만들기 위해서 11명이 피땀 흘려서 노력하잖아요. 근데 그 한 골을 골키퍼 한 명이 막아버리면 저한테 시선이 집중될 수도 있고, 11인분을 하는 느낌이라서 그게 참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Q. 본인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장점은 경기장에서 긍정적 에너지와 공중볼, 활동반경입니다. 단점은 너무 흥분하고 기복이 있는 편인 것이 단점입니다.
Q. 롤모델인 선수가 있나요? 저는 롤모델이 두 명인데, 한 명은 충남 아산FC 신송훈 선수입니다. 신송훈 선수가 K리그 최단신(180cm) 골키퍼로 알고 있어요. 저도 단신 골키퍼이다 보니 닮은 점이 있어서 롤모델이에요. 다른 한 선수는 바이에른 뮌헨의 노이어 골키퍼입니다. 노이어 선수처럼 똘끼있는 스타일을 좋아해서 선정했습니다.
Q. 본인만의 시그니처 세레머니가 있는 걸로 압니다. 세레머니의 유래가 궁금해요. 제가 FC서울 팬이에요. 거기 클리말라라는 선수가 영입되고 첫 골을 넣은 뒤 세레머니를 했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저도 그걸 보고 ‘나도 언제 한번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승부차기 막고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 같아요. 여담으로 요즘은 상대가 역세레머니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웃음) 상대가 PK를 성공하면 저한테 와서 똑같은 세레머니를 하더라고요.(웃음)
#경희대학교 Q. 본인이 생각하는 경희대 축구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팀적으로는 좀 선배와 후배 간의 허물없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장점이에요. 축구적으로는 다른 팀들보다 수가 높은 축구를 하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Q. 경희대학교 졸업 전 목표는 무엇인가요? 제가 전국체전과 왕중왕전을 나가는 게 목표였는데 1, 2학년 때 전국체전이랑 왕중왕전을 못 나갔어요. 그런데 3학년이 돼서 두 대회를 나갈 수 있게 됐어요. 동기인 경원이랑 항상 얘기하는 게 왕중왕전 우승은 꼭 해보고 싶어요.
Q. 경희대에서 본인이 가장 성장하게 된 부분은 무엇인가요? 축구적으로는 승부차기 능력이 는 것 같아요. 또, 스스로 느끼기에 가장 성장한 부분은 점은 포용력이에요. 팀원을 어떻게 하면 뭉치도록 할 수 있을지, 혹은 선수들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그런 부분이 성장한 것 같아요.
Q. 팀에서 요구되는 이준희 선수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책임감이 있는 선수가 되길 원하시는 것 같아요. 팀원들을 챙기는 ‘버팀목’이 되길 바라세요. 경기장 내에서는 파이팅과 분위기를 주도하는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Q. 경희대학교에서 기억에 남는 대회 에피소드가 있나요? 작년 추계대회(제61회 추계대학축구연맹전 태백산기) 우승한 게 기억에 남는데, 그 대회를 겪었던 선수라면 이 에피소드를 말할 것 같아요. 태백에 가서 첫날 훈련을 하는데, 저희가 훈련 전후로 화이팅을 해요. 지금은 졸업한 산이형(강산, 22학번)이 하신 말이 있어요. 파이팅 할 때 “우승합시다!”라고 화이팅을 하자는 거예요. 사람이 말하는 데로 이루어진다고 이번 대회는 한 번 이렇게 화이팅을 하자고 했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우승해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
Q. 경희대학교에서 기억에 남는 본인의 활약이 있었나요? 작년 태백산기에서 승부차기로 본선 토너먼트를 다 이긴 게 기억에 남는데, 그중에서도 두 개가 기억에 남아요. 제가 경희대 와서 태백산기 전까지는 승부차기를 모두 졌어요. 처음 승부차기를 이긴 게 22강 강서대학교전이에요. 그 당시 승부차기에서 한 개를 막고 ‘이건 이겼다.’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제가 막으면 못 넣는 상황이 반복됐어요. 그때 주장 형이 못 넣고 4학년 형이 못 넣고 이래서 팀이 흔들릴 뻔했는데, 제가 세 개를 막아서 이겼어요. 경희대가 오랜만에 승부차기에서 이겼기에 엄청 기억에 남아요.
다른 하나는 이번 겨울 춘계대회(제62회 춘계대학축구연맹전 통영기) 4강전에서 아주대학교와 경기를 했어요. 그때 0-0인 상황에서 90분 추가시간에 저희가 PK를 내줬어요. 사실 경기가 끝난 것과 다름이 없었는데, 제가 그것을 막고 승부차기에서도 이겨서 기억에 남아요.
Q. 경희대학교에서의 이준희를 한 문장으로 기억한다면 어떤 선수로 남고 싶나요? 제가 신입생 시절 레굴루스 인터뷰 때 경희대 골키퍼 하면 이준희가 생각나게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근데 사실 경희대 골키퍼하면 이운재 선수님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경희대 골키퍼 하면 이준희가 떠오르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태백산기 Q. 지난해 태백산기 우승 당시를 돌아보면 어떤 대회였나요? 축구는 11명이 뛰잖아요. 근데 벤치에 있는 선수들도 있고, 어떻게 보면 ‘내가 뛰면 더 잘할텐데’라 생각하며 본인이 뛰고 싶을 수도 있는데, 작년 대회를 보면 벤치에 있거나, 부상으로 대회를 못 뛰고 집에서 응원하는 선수나 모두가 한마음으로 우승을 간절히 염원했던 대회라고 느껴요.
Q. 우승했을 때 소감은 어땠나요? 솔직히 경희대 입학하고서 ‘우승 한 번 해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정말 우승하니까 당시에는 실감이 안나고 꿈같고 이제야 좋았다고 느껴요.
Q. 태백산기 이후로 개인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제가 1학년 때 어깨 수술로 시즌을 통으로 못 뛰었어요. 2학년 때 제대로 하자마자 태백산기 우승을 한 느낌인데, 우승하기 전까지는 자신감이 굉장히 없었어요. 1년 공백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뒤쳐졌다는 생각과 골키퍼 코치가 없어서 ’내가 프로에 갈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을 올릴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어요. 태백산기 우승이 지금까지 축구하는데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자신감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Q. 토너먼트 5경기 중 4경기가 승부차기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골키퍼 입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딱 두 가지가 생각나는데 첫 번째는 아까 말씀드렸던 22강 강서대전이에요. 그때가 경희대 승부차기 첫 승이었는데 제가 막으면 그다음 키커들이 못 넣고 또 제가 막으면 다음 키커가 골대 바깥으로 차고 이런 순간이었어요. 역시 내가 아무리 막아도 승부차기로는 못 이기나 생각이 들며 좀 힘들었어요. 다른 하나는 광운대학교 결승전이에요. 그때 여름 대회였는데 3시에 시작해서 엄청 더웠어요. 코너킥 수비를 하는데 팀원들 입이 다 하얘져서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진짜 잘못하다간 그냥 실점하고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애들한테 에너지 불어 넣어주려고 했는데도 좀 힘들었어요. Q. 태백산기에서 16강부터 결승전까지 5경기 중 4경기를 승부차기까지 갔습니다. 18개 중 10개를 막아냈어요. 그 당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승부차기를 총 4번했는데 4번 다 심경이 달랐어요.
Q_강서대전에는 어떤 심경이었나요? 솔직히 강서대전은 승부차기 이어지자마자 포기를 해서 마음이 가벼웠어요. 물론 승부차기 준비를 엄청 열심히 하긴 했어요. 승부차기에서 그만 지고 싶어서 25학번 영웅(장영웅)이랑 연구하면서 어떤 대회보다 승부차기 준비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막상 승부차기에 가니까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은 거예요. 솔직히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Q_울산대전에는 어떤 심경이었나요? 다음이 울산대전이었는데, 울산대전 때는 모두 눈에서 불이 나올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3년간 이런 눈빛을 본 적이 없어요. 그만큼 간절했어요. 저희가 전반기에 U리그에서 7대0으로 졌기 때문에 저희가 울산대랑 대진이 잡히자마자 복수의 기회라 생각했어요. 사실 그때 울산대가 엄청 잘했던 팀인데도 버티면서 승부차기까지 갔어요. 근데 그때는 너무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때는 딱 승부차기 시작하기 전에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이 들어서 1번 키커와 3번 키커를 막고 승리했어요.
Q_영남대전에는 어떤 심경이었나요? 다음은 영남대학교전이었어요. 제 고등학교 선배들 중에 영남대에 진학한 선수들이 엄청 많아요. 근데 그 선배들이 다 킥력이 좋은 선수들이어서 경기 시작하기 전에 제가 ’형들이 다 PK를 찰 것 같은데 만약에 승부차기에 간다면 어디로 찰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들어갔어요. 그래서 정말 그 선배 PK를 막았는데 그때 오히려 아는 사람이어서 잘 막았던 것 같아요.
Q_광운대전에는 어떤 심경이었나요? 마지막 광운대전 결승에서 1, 2번 키커를 막았는데 개인적으로 광운대에 아쉬운 감정이 있어요. 사실 광운대에서 저를 별로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 경희대에 진학했는데, 결승전에서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있게 임하니까 하늘도 그걸 도와준 것 같기도 해요.
지금까지 경희대학교 이준희 인간적인 모습과 축구인생, 경희대학교에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 편에서는 이준희하면 떠오르는 키워드인 승부차기와 단신 골키퍼 이야기를 들어볼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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