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SF

KUSF

대학스포츠 뉴스 생생한 대학스포츠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대학스포츠 뉴스

[2026년 5월호] 풋볼이라는 뿌리, 세계를 향한 서로 다른 전진의 역사
작성자 SPORTS KU 이다경작성일 2026.05.23 조회 68


[SPORTS KU=글 이다경 기자, 사진 최현정 기자, SPORTS KU DB]오늘날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축구와 럭비는 사실 풋볼(Football)’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형제이다. 출발점은 같았지만, 두 종목은 분열을 선택했다. 손을 포기하고 발끝의 정교함을 택한 축구와 손을 허락하되 앞으로 던질 수 없는 역설을 택한 럭비. 닮은 듯 전혀 다른 두 전진의 역사를 통해, 붉은 유니폼 속 숨겨진 전략과 투혼의 기원을 추적해 보자.

 

손을 쓸 것인가, 발을 쓸것인가


 

#럭비의 탄생: 윌리엄 웹 엘리스의 전설

  럭비만의 역사는 182311월 영국의 럭비스쿨에서 시작됐다. 당시 영국의 럭비스쿨에서 행해지던 풋볼은 경기 중 손으로 공을 정지시키거나 만지는 정도의 행위가 가능했다. 그러나 윌리엄 웹 엘리스(William Webb Ellis)’ 선수가 경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공을 들고 골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공을 손으로 들고, 앞으로 질주한다라는 현대 럭비의 틀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엘리스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럭비스쿨은 동상을 세웠고, 럭비 월드컵의 우승 트로피 또한 그의 이름을 딴 웹 엘리스 컵이라고 명명됐다.

 

 

윌리엄 웹 엘리스 사건 이후 럭비스쿨에서는 풋볼 경기 중 공을 손에 잡고 달리는 것이 보편화됐고, 곧 다른 지역으로도 퍼져나가 많은 사람이 손으로 하는 풋볼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2년 뒤인 1845828, 럭비스쿨의 세 학생이 작성한 풋볼 규칙(Football Rules)’이 학생 총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럭비는 성문화된 체계를 갖춘, 독립적인 스포츠로 거듭나게 됐다.

 

#축구의 탄생: 손을 금지한 풋볼

  럭비의 성문화 이후, ‘손 사용 제한해킹(Hacking, 상대 정강이 차기) 금지를 골자로 한 통합 규칙 제정 노력이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1848,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여러 학교 학생이 모여 통합 규칙을 제정했다. 이로부터 8년 후인 1856년에도 풋볼 규칙을 통일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186310, 슈루즈베리, 이튼, 럭비, 말버러, 해로우, 웨스트민스터 스쿨을 대표하는 9명의 선수로 구성된 위원회가 새로운 규칙을 완성했다. 1863년 규칙은 1856년 규칙과 차이점이 상당수 있었지만, 손 사용과 해킹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그 결을 같이 한다.

  한편, 1863, 축구클럽 반스(Barnes)의 주장이던 에베네저 콥 몰리(Ebenezer Cobb Morley)가 벨스 라이프 신문에 통합 풋볼 규칙을 제정하기 위한 운영 기구 창설과 회의를 제안하는 글을 실었다. 이에 여러 풋볼 클럽의 대표자가 한자리에 모였고, 이 자리에서 풋볼 협회(Football Association, 이하 FA)가 설립됐다.

 

  FA의 주관으로 풋볼의 규칙을 통합하기 위한 회의가 여러 차례 열렸지만, 손 사용과 해킹 허용 여부 등에 대한 이견들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회의에서 손 사용과 해킹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규칙이 명문화되자, 결국 손 사용을 허용하는 풋볼을 지지하는 클럽들이 FA에서 탈퇴하여 자신들만의 협회를 따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영국 럭비 협회인 럭비 풋볼 유니언이다. 럭비 풋볼 유니언은 월드 럭비가 창설되기 전까지 럭비의 국제 관리 기구 역할을 맡았다. 발로 플레이하는 풋볼(축구)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FA에 남아 FA의 규칙을 따른 스포츠를 시작했다.


 

두개의 길: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

  이렇게 다른 길을 걷게 된 두 스포츠는 각각 아마추어리즘프로페셔널리즘의 길에서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며 다르게 발전했다.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이 선택이 어떤 차이를 만들었는지 살펴보자.

 

#아마추어리즘? 프로페셔널리즘?

  아마추어리즘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Amator’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어떤 일을 금전적 이익이나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즐거움과 열정으로 행하는 정신을 말한다. 스포츠에서 아마추어는 전업 운동선수가 아닌 취미로써 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을 일컫는다.

  프로페셔널리즘은 아마추어리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신의 분야를 직업으로 삼아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책임을 동반하는 정신을 의미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프로선수라고 할 때의 프로가 바로 이 프로페셔널리즘에서 온 말이다. 스포츠에서 프로는 운동하는 것을 전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말한다이 두 개념을 표로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아마추어리즘

프로페셔널리즘

주된 동기

활동 자체에서 얻는 즐거움, 자기만족

경제적 보상 및 직업적 성공

핵심 가치

참가 과정과 페어플레이

결과(승리)와 최상의 성과

수행 태도

자율적이고 유희적인 참여

체계적인 훈련과 전문가적 책임

 

#럭비: 신사를 위한 스포츠

  럭비는 그 시작이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인 럭비스쿨인 만큼 귀족적인 성격이 강했다. 당대 귀족들은 스포츠를 교양과 수양의 수단으로 보았기 때문에 럭비의 상업화와 프로화를 배격하며 아마추어리즘을 고수했다. 여기에 럭비 자체의 특징이 더해져 럭비의 귀족적 성격은 더 강해졌다.

  첫 번째로 럭비는 시설 기준이 까다롭다. 트라이를 위해 몸을 날리거나 상대방을 저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태클을 걸어야 하는 종목 특성상 잔디 구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잔디가 넓게 깔려있으면서 잘 관리되고 있다는 두 가지 조건을 성립시키기는 어렵다. 두 번째로 럭비는 부상 위험이 상당히 크다. 경기를 뛰는 것이 생계와 직결되는 프로선수에게, 부상을 당하기 쉬운 럭비는 너무나도 위험한 선택지였다.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고, 럭비와 생계가 관련 없는 귀족들만이 럭비를 즐길 수 있던 이유였다. 세 번째로 럭비는 규칙이 상당히 복잡하다. 대표적으로 스크럼이나 라인아웃 시의 전술적 움직임은 숙련된 지도자 없이는 흉내조차 어렵다.

 

 

  이런 성격들로 인해 귀족 스포츠로 정립된 럭비는 영국군과 유학생에 의해 다른 국가로 전파됐다. 이 과정에서 호주나 뉴질랜드 등의 상류층 학교를 중심으로 전수되며 그 성격을 유지했다. 대중화보다는 선별된 계층의 결속을 선택한 럭비는 오늘날 영연방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를 이루게 됐다.

 

#축구: 모두를 위한 스포츠

  축구는 1863년 독립한 이후로 잉글랜드 북부의 공장 지대를 중심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인기에 힘입어 1871년에는 세계 최초의 축구 대회인 FA컵이 창설됐고, 1886년에는 국제 축구 규칙이 합의되며 경기 방식의 표준화를 이뤄냈다. 축구가 정립된 지 25년 만인 1888년에는 총 12개의 프로 클럽이 참여하는 최초의 축구 리그가 설립됐다.

  이렇게 프로페셔널리즘을 조기에 수용함으로써, 노동자들이 경기 출전에 따른 보상을 받으며 선수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실력 있는 노동자 계층의 유입을 가속했고, 축구의 인기는 더더욱 높아졌다. 인기가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자본이 유입됐고, 리그는 발전했다. 여기에 더해, 규칙이 직관적이고, 공과 공간만 있으면 즐길 수 있다는 축구의 특징이 더해져 축구는 빠르게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이후 1904년 국제축구연맹(FIFA)이 창설되며 단일 규칙, 단일 기구라는 원칙 아래 전 세계 축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는 데 성공했다. 이 덕분에 축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와 많은 팬을 보유한 대중적인 스포츠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럭비의 야성과 축구의 지성: 닮은 듯 다른 전진

  럭비는 거친 숨소리와 신체 충돌이 지배하는 야성의 스포츠이다. 하지만 이 격렬함의 이면에는 럭비만의 독특하고도 숭고한 철학이 숨어있다. 바로 공을 뒤로 던져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역설적 규칙이다.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뒤를 받쳐주는 동료가 있어야 하며, 뒤로 보낸 공을 누군가 받아줄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럭비의 전진은 곧 공동체의 전진이다. 트라이로 향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형성되는 럭(Ruck)은 이 사실을 증명한다. 공을 잡은 선수가 쓰러지면 동료들은 지체 없이 그 위를 밀고 들어가 공을 보호하는 럭을 형성한다. 이는 나를 던져 동료의 다음 전진을 보장하는 럭비만의 방식이다. 흙투성이가 된 채 서로의 어깨를 맞대어 스크럼을 짜고, 동료를 믿고 몸을 던질 때에야 그들은 전진할 수 있다.

  한편 축구의 90분은 끊임없는 판단과 선택이 교차하는 치밀한 수읽기의 향연이다. 그라운드 위에서 개인의 화려한 드리블만으로 골대까지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는다. 축구는 동료의 위치를 읽어내는 시야와, 숨겨진 기회를 포착하는 통찰력으로 완성된다. 특히 축구의 지성은 공을 가지지 않은 10명의 선수가 움직이는 오프 더 볼(Off the ball)’에서 정점을 찍는다. 단순히 공을 쫓는 것이 아니라, 수비를 유인하고 빈 곳을 찾아 들어가는 유기적인 움직임이 수반될 때 비로소 전진의 통로가 열리기 때문이다. 발끝에서 시작된 짧은 패스들이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날카로움이 제련된다. 11명의 선수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서로의 움직임을 보완하는 것이 축구가 보여주는 전진의 방식이다.

 

 

 

캠퍼스에 뿌리내린 두 개의 유산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축구와 럭비는 각기 다른 철학을 품고 전 세계로 나아갔다. 이 닮은 듯 다른 두 종목은 오늘날 고려대학교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붉은 유니폼으로 다시 만난다.

축구가 전 세계가 함께 호흡하는 대중적 열광을 상징한다면 럭비는 학교 스포츠가 가지는 견고한 결속과 끈끈한 동료애를 상징한다. 고려대는 이 두 종목을 동시에 계승하며, 안암의 그라운드 위에 승리 그 이상의 가치를 써 내려가고 있다.

 

  안암의 그라운드 위에 수놓아진 럭비와 축구. 이 두 개의 유산은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의 가치를 전해준다. 때로는 굴하지 않는 투지로, 때로는 냉철한 시각으로, 때로는 동료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두 개의 공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 붉은 유니폼을 입고 달리는 선수들의 발걸음 끝에, 우리는 고려대학교만의 찬란한 전진을 목격한다.

 

 

 

 

 

이전글 [테니스] '마의 16강' 탈출하며 값진 성과 얻은 건국대, 메달 추가하며 전국학생선수권 종료
다음글 [SPORTS KU 2025년 5월호] 대학생 운동선수의 하루 – 하키부가 알려줄게!